성균관대학교 웹진

인물포커스 | 성대사람들


“안녕하세요. 우리 학교 한문학과에 90학번으로 입학한 이정원이라고 합니다. 학부과정을 마치고 우리 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석사과정과 한문고전번역협동과정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연수부, 상임연구부 과정을 마친 뒤에 1998년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문학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국문학과로 진학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죠. 대학 원서를 쓸 무렵 문학을 전공한 지인이 우리나라 고전 문학들이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있어 한문학을 전공하는 것도 우리나라 문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줬어요. 그 말을 계기로 한문학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실제로 한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학문의 폭도 넓어지고 연구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죠.

제가 대학생이었던 90년대 초반은 대학생들이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했던 시기였어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저는 한문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여름방학동안 서당에 가서 분위기를 익히기도 했어요. 군대를 마치고 복학 전에 지금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 연수원 3년 과정에 입학했어요. 연수원에 들어가려면 사서(四書) 시험도 봐야하고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에요. 그렇게 연수원 과정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공부 량이 너무 많아서 힘들기도 했죠. 학교를 졸업하면서 연수원 과정도 함께 끝냈고, 이어서 민족문화추진회의 상임 연구원 과정에 들어갔어요. 상임연구원을 다니며 대학원에도 진학했어요. 2년 과정의 상임연구원을 마친 후 바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08년도에 대학에 처음으로 한문 고전번역협동과정이 생겼는데 석박사통합과정에 입학해 과정을 마쳤습니다.

번역원에 대해 생소한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확한 명칭은 한국고전번역원이고 간단히 소개하자면 우리나라의 고전을 번역하는 곳이에요. 한글까지 포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문 고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죠. 예를 들자면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것들을 번역하는 곳이고요. 《율곡집》, 《퇴계집》, 《다산시문집》 등 성현들의 문집도 번역하고 있어요. 1965년에 민족문화추진회라는 민간단체로 창립되어 정부의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2007년도에 한국고전번역원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공공기관으로 탈바꿈했는데 개편되면서 다방면으로 사업도 확대되었어요. 번역 사업을 진행하면서 한국문집총간을 영인간행 하기도 했고, 한문 고전을 번역할 인재양성 사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고전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누구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했습니다. 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있는 검색창에서 검색하면 과거의 기록들을 바로 찾아볼 수 있어요.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 ‘공길’이도 실존 인물입니다. 공길이와 관련된 일화도 검색하면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쉽게 고전을 배우고 고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도 늘어나면 좋겠지만, 공간도 협소하고 지원도 많지 않아서 현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습니다. 방학 동안에 논어나 맹자 특강을 하는데 그것마저도 조금 어려운 수준이라 어느 정도 소양을 갖춘 분들이 들어야 해요. 이제 번역원이 신청사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그 때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강좌들도 더 다양하게 확대될 계획이에요. 몇 년 전 부터는 일반인들이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과 아이들을 위한 책도 내고 있습니다.

저는 번역원에서 문집을 번역하고 있어요. 지금은 신숙주의 손자인 신용개의 문집을 번역 중입니다. 그리고 동아일보에 격주로 ‘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라는 제목으로 고전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어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번역원으로 기구가 개편되고 사업이 확대되면서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고전에 대한 글을 메일로 보내는 메일링 서비스를 진행하기 시작했어요. 일반인들에게 고전에 대한 연구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고전을 널리 알리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들이 쌓여서 《생각세번》이라는 책도 만들어 졌고, 칼럼까지 쓰게 된 것이죠. 지금 쓰고 있는 칼럼은 고전 구절을 제시하면서 뜻, 그에 대한 배경이나 현대적 의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어요.

고전이라면 고리타분하고 지겹고, 재미없게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의 역사와 사상, 그리고 뿌리가 담겨 있는 것이에요. 한 개인으로 봤을 때, 과거의 모든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고, 과거의 모든 것이 현재의 나를 있게 만든 것인데, 역사는 범위를 조금 더 확장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과거를 본다는 것은 미래를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해요. 과거의 것이 현재로도 이어지고, 더 나아가 미래로도 이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고전이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 과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니까요.

특히, 우리의 고전이 중요한 이유는 서양 고전보다 우리의 정서, 사상과 더 잘 맞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동안 그 맥이 잠시 끊어졌던 것이 굉장히 안타깝죠. 그 후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어서 현재에 와서는 우리의 고전을 더 이해하고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고요. 고전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잡고 더 나은 미래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고전번역원의 슬로건이 “고전, 내일로 가는 옛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슬로건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고전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런 고전들이 안타깝게도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있어요. 그래서 번역하는 일이 필요하기도 한 것이고요.

제가 학부생일 시절, 과학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수업을 들으며 우리나라의 과학사는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어요. 생각해보면 동양철학과라는 학과가 있는 학교는 있어도, 서양철학과라는 학과가 있는 학교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철학과라고 하면 다 서양철학을 배우는 학과로 인식 되는 거죠. 우리나라가 대부분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우리의 것을 더 중심으로, 우선으로 생각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죠. 우리의 고전이 풍성해지면 그런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현재 조선왕조실록은 완역이 되었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되어서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재번역 중이고, 일성록이나 승정원일기는 아직 완역되지 않았어요. 승정원일기는 완역이 되려면 50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금 초등학생이 환갑이 돼야 번역이 완료된다는 이야기지요. 번역 사업이 이렇게 더딘 까닭이 지원이 부족한 이유도 있겠지만,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정도는 더 공부해야 초급역자로서 일 할 수 있어요. 공부 기간이 굉장히 길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되는 일이 아니라 큰 관심을 받는 일도 아니지요. 전문가 양성이 선행되지 않은 채로 사업에 대한 경제적 지원만 늘어난다면, 어설픈 번역으로 사업이 부실화될 수 있고, 정확한 번역이 중요한데 번역의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전문가의 양성이 꼭 필요합니다.

고전은 많은 의미와 가치를 가지기는 하지만 그 원문 자체만으로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읽힐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요. 자칫하면 그냥 단절될 수 있는 역사인데, 제 능력으로 단절된 역사를 한 줄기라도 현재와 미래로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죠. 저는 고전과 현재가 큰 강을 끼고 단절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와 같은 번역자들이 그 강을 헤엄쳐서 넘나들며 다리를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고전과 현대의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요. 그렇게 번역 사업이 더욱 확대되고, 전문가들이 많이 양성된다면 돌다리가 더 큰 다리로 발전할 수 있죠. 불경을 산스크리트어로 공부하는 사람이 없듯이, 한문공부를 안 해도 우리 고전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번역의 이상적인 목표입니다.

번역을 하다보면 제 자신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워낙 범주도 넓고, 분야가 많아 제 능력이 미약해보이고 정확한 의미파악이 힘들기도 하죠. 번역은 논문을 쓰는 일과 달라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원문의 모든 부분을 번역해야 해요. 제가 쓴 글이 아니라 개인의 독백 같은 부분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특히 한문은 역사성이 깊어 속뜻과 고사를 이해해야 제대로 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서삼경과 주요 고전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으로 해야 하고, 일 하는 자체가 공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실제로도 일하면서 가장 큰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 가장 큰 목표도 번역의 어려움이 없도록 확장된 능력으로 원활하게 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능동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계발에 힘쓰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사회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불리만 판단해 따지지 말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참여해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과거와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는 것처럼, 지금 당장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살펴보아야 하고, 그 수단은 고전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고전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교양 수업을 통해 한 번쯤은 접해 보았을 《논어》를 가장 권해주고 싶어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공자는 동양사상, 그리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에요. 공자를 이해하면 우리 선조의 생활상이나 가치관을 이해하기 쉬워지죠. 공자는 인간 통찰이 굉장히 뛰어나서 《논어》를 보며 인간사를 배울 수도 있어요. 허균의 문집도 권해주고 싶네요. 허균은 당시 양반사회의 엘리트였지만, 그곳에 멈추지 않고 사회 변혁에 대한 꿈을 꾼 사람이에요. 《홍길동전》이나 <호민론>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학생들이 현실에 대한 부조리에 맞서고 바꿔나갔으면 좋겠다는 점에서 추천해주고 싶네요.

이지원 기자
이수진 기자

기사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