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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 성대사람들


O tvN의 “어쩌다 어른”은 다양한 주제를 쉽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프리미엄 특강쇼이다. 진부한 멘토식 강연이 아니라 역사, 음식, 뇌, 기생충 등 여러 분야의 흥미로운 강연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어쩌다 어른에서 ‘함께 지성’을 주제로 강연을 펼친 김범준 교수를 만나보았다. 김범준 교수는 서울대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우리 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괴짜 물리학자인 그에게 물리학과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 물었다.

“제가 전공한 통계물리학은 물리학에서 입자가 굉장히 많은 시스템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여러 물리학 중에 큰 분야는 아니지만 연구자가 적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중학생 때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망원경을 사기도 하고 밤에 별을 보는 일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온 뒤, 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물리학자들은 보편성을 좋아해요. 자신이 만든 이론이 다양하게 적용되는 사례를 알고 싶어하죠. 그래서 이론을 만들고 정말로 그러한지 실제 데이터와 비교해요. 우리나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데이터와도 비교해 볼 수 있죠.

요즘 하는 연구는 크게 두 가지에요. 먼저 전통적으로 통계물리학이 주로 다루는 주제에요. 통계 물리학자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 현상 중에 ‘상전이’가 있어요. 상전이는 물이 얼음이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되듯이 물질의 상태가 급격히 변하는 현상이에요. “상전이를 어떻게 이해할까?”가 통계물리학의 중심 주제 중 하나에요. 저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계속 관심이 있어요. 다른 연구 주제들도 있어요. 이 연구는 통계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연구방법을 통해 물리학이 아닌 분야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사회현상이나 주식시장, 경제현상 등을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구에요.

일반적으로 ‘물리학’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연구 주제들이 있잖아요. 제 연구는 그 주제들과는 달라 보이죠. 이런 이유에서 ‘괴짜 물리학자’라고 말하지만 저처럼 연구 관심이 물리학뿐 아니라 일상 생활, 사회에 관심이 있는 통계물리학자들이 꽤 많아요. 물리학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저는 괴짜 물리학자라고 할 수 있지만 통계물리학자의 테두리 안에서 보면 그렇지 않아요.”

통계물리학을 연구하며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었는지 물어 보니 흥미로운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흩어져서 살잖아요. 어느 곳은 인구가 많고 다른 지역은 적죠. 인구가 다른 여러 마을이나 도시가 있을 때, 카페는 인구 밀도에 대해 어떻게 숫자가 변할까? 학교는 어떻게 변할까? 에 대한 연구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연구에 따르면 인구밀도와 학교, 카페 수의 관계를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도시에서 카페의 숫자는 인구밀도에 비례해야 해요. 그런데 학교 숫자는 인구밀도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 인구밀도의 3분의 2승에 비례해야 함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를 통해 ‘강원도 산간 초등학교를 통폐합하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봤어요.”

이야기 내내 통계물리학에 대한 김범준 교수의 애정이 느껴졌다. 그의 학생 시절은 어땠는지 대학생활과 현재 바라는 점들을 물어보았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많이 놀기도 했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는 80년대 중반이라 우리사회가 복잡한 세상이었어요. 6월 민주항쟁도 있었고요. 제 친구들 중에 최루탄에 맞아서 눈을 심하게 다친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당시 학생들은 굉장히 어둡게 살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자친구와 클럽에 놀러 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그런 면에서 어찌 보면 불우한 대학생활을 보내긴 했는데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면 괜찮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어요. 학생들이 큰 틀에서 생각할 기회가 많았거든요.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 혹은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 사회가 발전할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렇게 큰 틀에서 보는 훈련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심각한 대학생활을 보낸 점이 아쉽지만 덕분에 생각의 틀이 커질 수 있었어요. 대학생활은 괜찮았던 것 같아요.

대부분 연구자들처럼 지금 하고 있는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게 꿈이에요. 저는 책 읽는 걸 아주 좋아해요. 사는 책도 많고 출판사 같은 곳에서 책을 보내주기도 해요. 책이 많이 밀려서 몇 달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밀린 책들을 다 보고 싶어요. 아마 어렵겠죠. (웃음) 예전 생활과 다르게 지금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어요. 지적인 자극도 되고 굉장히 재미있어요. 과학자가 아닌 완전히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세상이 정말 다양하고 흥미롭다고 느껴요. 각 분야에서 그 분야를 잘 아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들께 배우는 것도 정말 많고요.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주 좋아해요.”

‘함께 지성’ 강연에서 김범준 교수는 물리학을 재미있고 쉽게 설명하여 시청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다. 강연 오프닝에 대한 일화, 주제 선택 이유 등 강연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왜 모자는 안 날아갈까?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 왕으로 불렸던 만큼 강연도 질문으로 시작된다. 어쩌다 어른 화면 속에 우산을 쓰고 날아가는 남자에 대한 질문이다.

“김상중씨가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꽤 걸렸는데 스크린이 보이더라고요. 보니까 사람이 우산을 쓰고 날아가는 그림이었어요. 그런데 우산이 날아가려면 바람이 굉장히 세야 할 텐데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는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청객들에게 질문을 했죠. 모자 이야기를 통해서 과학자들이 궁금한 것들을 자주 생각해 내는 사람이다, 호기심이 많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함께 지성’을 선택한 이유

“강연이 지성, 야성, 감성처럼 성(性)을 키워드로 나눠졌는데 지성에 맞춰 강의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어요. 강의를 준비할 때 생각한 것이 집단지성이에요.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협동하고 협력함으로써 공통된 의견을 만드는 과정을 집단 지성이라고 부르잖아요. 저는 집단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집단 지성보다는 “함께 지성”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많이 말하고 있어요. 제가 함께 지성에 관심이 있어서 강연 주제도 함께 지성으로 정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개미, 꿀벌 사회에서 함께 지성의 예가 무엇이 있는지 등의 이야기를 했어요. 방송에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의견 구조에 대해 말했어요.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구조가 있잖아요. 의견을 교환하는 구조가 어떻게 돼야 올바른 의견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의 성씨 연구

“통계물리학자들이 통계물리학의 연구 방법을 이용해서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 관심이 많아요. 성씨도 그러한 연구들 중 하나로 볼 수 있어요. 성씨가 굉장히 흥미로운데 아빠의 성씨를 아이가 받잖아요. 성씨가 외국에서 들어오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의 많은 성씨들은 중국으로부터 유래되거나 중국의 영향을 받았죠. 사람이 살고 결혼하고 늙고 죽는 현상을 물리학에서 이용하는 으뜸방정식(master equation)이라는 수학적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어요. 성씨는 크게 어렵지 않아요. 단순히 아빠 성씨를 아이가 이어받으니까요. 수학적 방법으로 우리나라 성씨 분포가 왜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물리학자가 다루기에 아주 좋은 주제예요.

우리 사회나 자연에 대해 알고 싶은 대상에 어떤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성씨는 경계가 있어서 그 영역에 화학자는 들어오면 안된다, 이런 식의 제한은 없어요. 재미있고 이해하고 싶은 문제가 있으면 누구나 다 노력해 볼 수 있죠. 물리학자가 사용하는 연구방법은 일반적으로 성씨나 인구학 연구자가 사용하는 방법과 달라요. 어느 방법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에요. 다른 시선으로 보는 성씨 연구가 우리나라의 문화, 성씨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사람들이 점점 변해서 물리학자가 성씨 연구를 왜 하는지 묻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강연에서도 인터뷰에서도 그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대학교 내에서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스웨덴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학생들이 강의자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픈 말을 자유롭게 하는 모습을 보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스승, 제자의 관계에서 의견을 교환할 때 한쪽이 주도적이에요. 학생들이 이야기를 못하는 쪽이죠. 이런 부분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하지만 유럽식의 스승, 제자 관계가 장점만 있지는 않아요. 상대적으로 차가워요.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면담 시간 외에 교수를 찾아가면 대부분 교수는 거절해요. 교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달라요. 질문이 있는 학생이 찾아오면 교수님들은 대개 “어~ 들어와요.” 하고 맞아주죠. 동양적인 문화가 가진 스승과 제자 관계의 이점이 분명 있어요. 서로에게 갖는 애정 같은 거죠. 이건 개인주의적인 서구사회에 비해 분명히 좋은 점이에요. 다만 우리나라는 너무 심할 때가 있어요. 제가 말을 하다가 잘못된 이야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학생들은 “그거 이상해요.” 라는 말을 못해요. 학부 수업에서도, 대학원생도 쉽게 못해요. 이런 점들이 교수와 학생, 교수와 대학생 사이에서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최근 우리 학교에서 약학대 대학원생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것도 이러한 문화와 관련이 있어요. 교수가 실험 결과를 조작했는데 교수의 지시에 따른 대학원생들에게도 배상금을 청구한 일이에요. 대학원생은 교수의 지시대로만 실험을 진행하는 거죠. 이 실험을 왜 하는지, 어떤 결과에 쓰이는지 물어보지도 못해요. 만약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면, 결과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질문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우리나라의 이런 전통적인 교수와 대학원생 관계를 감안해서, 전 우리 학교가 대학원생에게 청구한 구상권을 철회했으면 좋겠어요. 멀게는 양방향적이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새로운 제안이나 반대를 하는 것이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가능해지면 좋겠어요.”

너무 권위에 얽매이지 말라고 전하고 싶어요. 교수님이더라도 질문하고 의심해봐야 해요. 책도 많이 읽고요. 특히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해요. 지금 생각해보니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책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보면, 자신이 지금 관심을 가진 분야와 연결될 여지가 굉장히 많거든요. 이과 학생들도 문학 작품을 읽고 문과 학생들도 과학 책을 읽어야 해요. 특히 문과 학생들이 과학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추천하는 책은 제 책도 추천하고요 (웃음) ‘김상욱 교수의 과학공부’도 좋은 책이에요. ‘우연한 마음’은 뇌 과학에 관한 책인데 내용도 좋고 번역도 잘되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

물리학으로 세상을 꿰뚫어 보는 김범준 교수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함께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이지원 기자
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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