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인물포커스 | 성대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학교 발전협력팀에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학교 동문이라며 유학대학원 발전을 위해 기부금을 내고 싶다고 했다. 많은 기부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단지 학교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잠깐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젊은 시절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전쟁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수 없었다는데, 그에게 어떤 인생 스토리가 있는지 궁금해 만나봤다. 경영학과가 된 상학과를 1968년도에 졸업하고, 지금은 우리 학교 유학대학원에서 3학기째 공부하고 있다. 현재는 마포에서 서서갈비라 불리는 '연남 서식당'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1952년 겨울은 보릿고개였어요. 돈 많은 사람들 빼고는 양식이 다 떨어져 먹을게 없었죠. 전쟁중이라 매일 대포를 쏘아 대는 바람에 신촌 바닥이 풀 한포기 없이 새빨갰어요. 하수구 구멍 안에 숨어서 포탄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죠. 그런 시기라 농사는 당연히 지을 수 없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농사꾼이셨는데 여건이 안 되니까 술을 팔기 시작했죠. 술 한 잔 팔때마다 조금씩 이익을 붙여 번 돈으로 쌀을 사서 미음을 끓여 마시면서 허기를 달랬어요. 그렇게 술장사를 하다가 1972년에 유류파동 때문에 경제적으로 심한 격동기가 있었어요. 증권을 사기만 하면 돈을 벌고, 가만히 있어도 돈이 벌리던 때였어요. 그때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기 시작해서 갑자기 자동차가 많이 늘어나게 됐어요. 손님들이 운전을 해야해서 전보다 술을 많이 안 마시고, 안주만 먹더라고요. 술로 이익을 남기던 때라 안주 중심으로 장사를 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갈비를 팔기로 결정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술집에서 갈비를 파는 음식점이 된 것입니다.

특이한 점이, 저희 음식점은 의자 없이 테이블 주위에 서서 식사를 하게 되어 있어요. 사실 큰 이유는 없고 처음에는 의자가 없어서 서서 먹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예요. 초기에는 음식점에 이름도 없었거든요. '서서갈비'라는 이름도 손님들이 모임 장소로 말하면서 '서서 갈비 먹는 집'이라고 먼저 부르기 시작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요. 따로 음식점 이름에 대해서 특허를 내지도 않았어요. 손님들이 지어준 이름이라서 그 이름은 제 것이 아니라 손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의자 없이 식사를 하게 된 것이 지금은 이벤트처럼 느껴지고, 인테리어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생긴 것 같아요. 다 우연의 시작이죠.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휴전이 되었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4·19혁명이 일어났죠. 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없어요. 제대로 다닌 학교라곤 대학교가 전부였죠. 전 상학과를 졸업했고, 유학대학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도 유학은 아니었어요. 사실 저는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어쩌다가 친구가 유학 수업을 들어 보자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들어보자 승낙했죠. 그게 대학원에 입학하자는 거였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해서 유학대학원을 다니게 되었어요. 1학기 때에는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는데 2학기 때부터는 숙제가 너무 많아져서 힘들어지더니, 이번 학기는 더 많아져서 굉장히 힘들어졌어요. 유학을 공부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 많아서 즐겁게 공부하고 있어요. 중국 유학자들을 보며 우리나라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점을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제 바람으로는 유학대학이 좀 더 크게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박사도 많이 양산하고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지원도 많이 해주고요. 공자파, 맹자파를 떠나 성균학파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유학을 수학 공부하듯이 하지 말고, 우리 학교 나름대로의 유학 학파가 있으면 참 좋지 않을까요? 다른 학교를 보면 각자 학교를 대표하는 특출난 학과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글로벌 시대에 맞는 우리 대학만의 학파를 만들어서 우리나라 국민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유학은 성균관대학교'하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퍼지면 더 좋고요. 그렇게 되려면 학교나,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많이 노력해야겠죠.

이번에 유학대학원에 5000만원을 기부 한 것은 유학대학원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에요. 친구의 권유로 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됐지만, 제 도움으로 유학대학이 더 발전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하면 졸업생으로서 기부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죠. 재학 중에 하면 학점 잘 달라고 기부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 제가 장학금 대상자라고 연락이 와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어요. 젊은 학생들이 받아야 하는 걸 제가 받게 되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그냥 기부를 해버려야 겠다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나는 유학대학 졸업생이다'라는 생각으로 어차피 기부할 거 시기를 앞당긴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기부금은 교수님들 연구비 등 유학대학이 빛나는 일이면 어디든 썼으면 좋겠어요. 이것으로 국가를 위한 재목을 기르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 두명이라도 나라에 봉사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교수님들이 다들 열심히 노력하시고, 특히 신정근 학장님이 유학대학 발전을 위해 굉장히 힘쓰고 있으신데, 그 분들 기도 살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유학을 계속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도전해보자고 하는데, 제 생각에 저는 석사학위를 따는 것도 제 능력에 비하면 과분한 학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석사학위를 취득한 다음에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외국어 공부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일에는 기본과 기초를 다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전 그 기초를 제대로 다지지 못한 것 같아서 한이 있기도 하고요. 원래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외국어를 배워서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이 제 꿈이기도 합니다. 외국어 공부, 특히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요. 일단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의 손님들이 굉장히 글로벌해요. 그러다 보니까 일어, 중국어, 영어 등 많은 외국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전 외국어를 잘 몰라서 대화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우리 세대는 환갑까지 사는 것도 오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백세시대니까 더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먹고 살만해지고 세계의 도시를 유람해 봐야겠다 생각해서 해외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외국어가 잘 안되니까 외국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 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외국어를 배워서 제가 사고 싶은 것도 자유롭게 사고, 놀러 다니면 좋을 것 같아요. 지하철을 타면 요즘에는 외국인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외국어로 자유롭게 말도 걸어보고 싶네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과 성실, 그리고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까지 음식점을 오래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도 정직함과 양심 때문이기도 해요. 주변을 보면, 결국 꾀를 부리고 정직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벌을 받게 되더라고요. 제 인생의 모토가 있어요. 인생을 3개로 쪼개서 살자는 거예요. 원래는 20대까지는 부모님 밑에서 편하게 생활하고, 40대까지는 좌충우돌하며 세상과 부딪혀 보고, 60대까지는 안정적으로 편한 삶을 영유하자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60대까지의 계획만 세우는 건 지금 현실이랑은 맞지 않잖아요. 이제는 30대까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60대까지는 치열하게 부딪히며 일하고, 90대까지는 취미를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처럼 인생에는 변화를 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어떻게 죽을 때까지 한 가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을 해서 잘 되면 그 일만 하고 평생 살려고 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저는 젊은 친구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쫀쫀하게 살지말고 대범할 줄도 알아야 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제가 젊은 시절보다 덜 감성적인 것 같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이 감성이 있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감성은 '덤'을 주는 것이거든요. 인정도 감성이 있어야 생겨나는 것이고요. 진심이 들어간 감성이 있는 인생이라면 마음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지원 기자
이수진 기자

기사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