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인물포커스 | 성대사람들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좋은 디자인의 원천은 생각이라 말했다. 사람들이 사용하거나 머물 때 얼마나 편리할지 혹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물건을 사용하면서 즐겁고 행복할지에 대한 고민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에서 나온 좋은 디자인은 색깔, 소재의 힘으로 완성된다.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따뜻한 색인지 차가운 색인지, 광이 있는지 없는지 등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핸드폰 케이스 하나, 옷 한 벌을 사더라도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한다. 마음먹고 사는 상품일수록 생각은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신중하게 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컬러디자이너들이다. 이번 인물포커스에서는 현대자동차 컬러팀에서 CMF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정윤아(디자인 00)동문을 만났다.

저는 현대자동차에 2세대 제네시스, 제네시스 쿠페, 엑센트, 투싼 프로젝트를 했어요. 컬러만 정하는 게 아니라 CMF(Color, Material, Finishing) 전반을 다뤄요. CMF디자이너를 컬러리스트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육안으로 보이는 차의 소재와 컬러를 다룬다고 생각하면 돼요, 차는 헤드 라이닝, 휠, 시트, 바닥에 깔리는 카펫, 대시보드 등 여러 부분으로 이뤄져 있어요. 이를 색깔과 소재로 표현하는 일이에요. 코디네이터, 컬러 디렉션, 소재 전략을 모두 포함해서요. 플라스틱, 가죽, 원단 등 소재에 대한 이해, 공법에 대한 계획, 비용까지도 계획해야 하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매번 엔지니어와 미팅이 있을 때마다 공부를 하고 준비를 했어요. 그래야 제가 원하는 재질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있는 팀에는 금속공예, 원단, 섬유, 자동차 디자인 등 여러 전공자가 있어요. 자동차의 스타일이 정해지고 나면 적절한 가격, 재료비, 컬러, 공법 등을 함께 정하죠. 계획뿐만 아니라 어떻게 전달할지도 고민해요. 이 차를 탈 고객들에 관해 공부를 하는 단계예요. 최근 트렌드라고 여겨지는 색깔이나 소재, 사회적 분위기 등 다양한 요소를 모두 공부해요.

이 길을 선택한 이유

제가 학교 다닐 때는 CMF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막연하게 소재와 컬러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패션, 인테리어처럼 구체적인 분야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소재를 제안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졸업할 때도 소재 책을 만들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관련 진로를 찾았어요. 사실 학생 때부터 꿈이 확실한 편이라 다른 길은 지원하지 않고 이쪽 일만 찾은 편이에요.

써피스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세부적으로 공간, 텍스타일, 공예가 있었어요. 세 가지 모두 좋아했는데 텍스타일 중에 소재에 대한 공부가 저랑 잘 맞았어요. 지금의 CMF처럼 전략을 세우고 샘플을 제시하는 수업도 재밌더라고요. 저는 자동차도 하나의 제품이지만 사람이 들어가 있는 하나의 공간이라 생각해요. 시트가 소파같이 느껴지고 차 안의 공간이 거실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이 꽤 오랜 시간 머무르는 공간이라 생각했어요. 이렇게 지금 하는 일이 대학생 때 공부가 충분히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금 학생들도 전공 공부를 충실히 했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일이야 많죠.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에요. 그런데 제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니죠. 여러 협력사와 업체 분들과 함께 일 해요. 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협력사에게 전달하면 그분들이 결과물을 가져와요. 작은 이미지와 느낌을 표현하면 그 분들이 이해한 뒤 적합한 소재를 가져오죠. 저는 그 소재들을 가지고 코디네이팅을 하고요. 형상과 재질이 맞지 않으면 엔지니어와 스타일링 디자이너도 설득해야 하죠. 상황에 따라 주장을 강하게 하기도 해요. 그러다 가끔 “여기서 내가 적절하게 포기하면, 더 좋고 더 고급스러운 피니싱에 대한 고집을 꺾으면 원활하게 일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제가 만드는 차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타는 차잖아요. 게다가 고객들이 적지 않은 금액을 모아서 오랫동안 신중하게 고민한 뒤 차를 구매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의 마감이나 컬러가 제가 조금 더 노력하면 구현되는데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신뢰나 진정성도 중요하니까요. 특히 제네시스 작업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현대 브랜드 내에서 고급 차종이었고 해외 독일 3사 등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객들이 제네시스를 구매하도록 하고 싶었죠. 브랜드 인지도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제품의 만족도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어찌보면 디자이너의 짐이라고도 할 수 있죠.(웃음) 단순히 예쁜 컬러 몇 개를 넣는 이상의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품으로 나왔을 때 뿌듯하죠. 제네시스가 꽤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결국 회사의 럭셔리 브랜드로 만들어졌거든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G80이라는 브랜드까지의 과정을 제가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좋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닌 것 같아서요. 제네시스를 사러 온 고객이 “제네시스에 이렇게 많은 색이 있는 줄 몰라서 고민했다.“라고 하기도 해요. 사실 전 이런 것도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사고싶고 마음에 드는 옵션들이 있을 때 고민하는 거니까요. 컬러 이름을 정하는 일이 어렵긴 하지만 이럴 때 ‘내가 작업한 결과물이 나쁘지는 않구나.‘라고 느껴요. 제가 개발한 컬러가 다른 파트에서 쓰일 때도 좋아요. 내부적으로 결정돼서 다른 차종에 적용 된 거예요. 탠브라운 컬러는 원래 G80에만 적용될 계획이었는데 i40와 산타페에도 쓰였어요. 한 컬러가 다른 차종에 쓰이는 일이 흔하지는 않아요. 공장이나 생산 문제가 아니라 오롯이 컬러가 예뻐서 쓰인 거니까 뿌듯하죠. ‘엑센트‘라는 차는 중국에서 ’베르나‘로 런칭했어요. 이 차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반응이 좋아서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여러 나라에 공장이 만들어져서 팔렸어요. 규모가 크고 고급 차종이라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차도 좋지만 엑센트처럼 규모가 작아도 외국에서 반응이 좋은 차에서도 보람을 느껴요.

영감을 얻는 일

여러가지에 관심이 많아요. 세상 돌아가는 것, 보고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눈에 보이는 모든 일에 다 관심이 있어요. 모터쇼, 해외 가구나 디자인 박람회도 가요. 트렌디한 장소들에 가서 인테리어도 봐요. 디자이너로서 시대가 흐르는 모습을 파악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외국 회사는 기초가 되는 화학회사가 기반이 되어 있어요. 소재나 도료 같은 부분이 잘 갖춰져 있죠. 그런 곳을 가보면 역사도 길고 노하우도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어요. 국내 업체의 경우 아직 그만큼의 기간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저희가 생각하는 것을 주도할 때가 많아서 벅차기도 하죠. 하지만 국내든 해외든 각각 장점이 달라요. 양쪽의 장점을 조화롭게 가져가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성실해야 해요. CMF는 제품의 컬러, 임펙트 등 적절함을 찾아내는 센스도 중요해요. 본인 스스로도 개발해야 하지만 부분적으로 타고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 부분을 채워나가는 데에 서 성실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신소재, 신공법 등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습득하는 일은 직접 발로 뛰어야 하거든요. 본인 스스로 노력해야 자신이 원하는 컬러에 원하는 소재를 매치하고 마감할 수 있어요. 경제적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삶이 윤택해지면서 고객의 안목이 높아졌어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라도 CMF 업무를 할 수 있었다면 선택했을 거예요. 예전에는 디자인 경영이라는 말이 없었어요. 제가 소재랑 소재 전략 공부하다보니 마케팅적 요소가 필요하더라고요. 어떻게, 언제 팔것인가, 포지셔닝 같은 것들이요. 사실 디자이너는 ‘나’가 아니라 ‘남’이 좋아하는 걸 하는 입장이에요. 구매가 될 만한 물건들이요. 소비자와 제품에 대한 것도 알아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학부 때 마케팅 수업을 찾아서 들었어요. 인터넷 비즈니스나 필요한 걸 찾아서 듣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학점이 모여서 복수전공을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러다 보니 무역거래나 상법 수업도 들었는데 회사에서 다른 파트를 이해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환율이 올라서 재료비 상승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면 훨씬 도움이 많이 되죠. 그래서 처음으로 디자인과에서 경영학 복수 전공을 했던 것 같아요. 15년 전이라 취업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그저 메인 분야인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 마케팅 수업을 들은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더 잘 알려주기 위해서 교육 수업도 들었어요. 학교를 좀 바쁘게 다닌 것 같네요.(웃음) 후배들도 학교 내에서 좋은 걸 많이 찾아서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이지원 기자
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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