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인물포커스 | 성대사람들

얼마 전, 우리학교 학생들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한 동문이 있다. 바로 회계사 및 세무사인 김형민(회계, 86) 동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처음부터 시작해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학교에 기부하기까지. 이번 인물포커스에서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를 만나 보았다.

김형민 동문은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집에서도, 친척들 중에서도 맏이였고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그에게 어떤 길을 어떻게 가라고 제시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주어진 방도가 없었다.

“저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 노는 것 좋아하고 공부는 잘 안하는 개구쟁이였어요.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연합고사를 쳤어요. 그 시험을 마치고 혼자 털레털레 집에 가는데 머릿속을 때리는 생각이 있었어요. ‘우리 집은 잘 살지도 않고 나도 공부를 잘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계속 이렇게 살면 내 인생은 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남들보다 시간을 많이 쓰면서 열심히 했죠. 하지만 열심히만 했던 것 같아요. 요령은 모른 채. 그리고 우리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죠. 사실 제가 처음 고시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남들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에요. 남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그 해결책이 고시라고 생각했죠. 고시를 통해 가난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는 우리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에게 ‘성균관대학교’란 가난하던 자신을 지금의 위치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곳이다.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양현관에 들어갔는데 그 때 제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 전까지의 저는 방법은 모른 채 그저 열심히만 하던 학생이었죠. 하지만 양현관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공부하는가에 대한 방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어느 순간 학문의 문이 확 트인다고 하잖아요. 저에게는 양현관에 들어와서가 바로 그 때였어요. 제가 공부할 때 했던 생각은 단 두 가지예요. ‘첫 번째, 틀린 문제는 또 안 틀리면 된다. 두 번째, 내가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도 모른다.’ 고시 공부에 있어서도 80%의 중요한 내용들과 20%의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이 있어요. 그 중 80%의 것들은 한 번 틀렸다면 다음번에는 틀리지 않으면 돼요. 그래서 오답노트를 만들면서 공부했죠. 나머지 20%는 어려우면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한 문제는 저도 모르면 남들도 모를 거라 생각했죠. 고시는 매우 방대한 범위를 다뤄요. 그렇기에 중요한 문제가 많이 나오겠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세부적인 것들을 붙잡고 있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중요한 부분의 파트만 나눠서 핵심만을 풀어갔죠. 이러한 방법들은 양현관에 있으면서 선배들에게 전수받았고요. 그러한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장소를 제공해 준 우리학교에 고맙기도 하고요.”

그는 23살의 어린 나이에 공인회계사 시험(CPA)에 합격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뒤 회계 법인에 입사하여 그 곳에서 몇 년간 일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기업의 감사반장을 맡았지만 그가 원하던 삶은 그것이 아니었다.

“제가 고시를 선택한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하지만 20대 후반에 저를 되돌아보니 제가 원하지 않던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그건 제가 바라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안정된 직장을 나와서 94년도에 제 사무실을 개업했어요. 처음 개업했을 때 정말 도움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인맥이 넓은 것도 아니었죠.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어요. ‘99명의 그저 그런 회계사가 아닌, 조금 이상하더라도 눈에 띄는 단 한 명의 회계사가 되자.’ 저는 가진 건 없지만 열심히, 조금은 독특한 모습으로 종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일을 했어요. 젊은 청년이 그렇게 가방 하나 메고 돌아다니는 걸 보며 고객들이 귀엽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덕분에 많은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었죠.”

그런 노력 덕에 1999년도까지 그는 회계사 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로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일을 하면 할수록 저는 회계사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 개업했을 때 한 거래 당 받는 금액과 20년이 지난 지금 받는 금액이 거의 동일해요. 저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까지 서류 가방 들고 다니면서 20년 전과 다름없는 돈을 벌며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저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어요. 그래서 2000년도 초반에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세무회계 강연을 시작했어요. 제가 그 때 한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컨설팅 회사의 고문회계사로서 신입 회계사들 교육을 하고 있었거든요. 3년간 연수원에서 강연을 하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어요. 바로 수익형 부동산이었어요.”

그는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많은 투자를 했다. 안정적인 회계사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한 것이다. 그의 과감한 결단과 새로움에 대한 도전 덕분에 50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의 목표에는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지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과감히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는지 종종 물어요. 그런데 사실 지금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은 무에서 만들어 낸 것들이잖아요. 저는 자신 있었어요. 지금보다 더 없었을 때도 있었는데 만일 실패한다면 그 때를 떠올리며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두려운 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어떤 것에 도전할 때 기존에 있던 익숙한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어요. 젊었을 때는 가진 게 별로 없으니까 버리기 쉬웠죠. 도전하기 쉽고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게 많아지면서 버리기가 어려워지죠. 안정되고 익숙한 것들을 버려야 새로운 무언가를 진행할 수 있는데 말이죠.”

이미 회계사로, 부동산 투자자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그지만, 그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9월, 그는 우리학교 문화융합대학원에 새내기로 입학한다.

“제가 우리학교 문화융합대학원에 입학하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 번째, 사실 젊을 때 저는 예술 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지식 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서 그 사람들이 부럽더라고요. 그들은 끝없이 창조할 수 있잖아요. 그들은 창조적 생각과 힘을 가지고 자신들의 에너지를 끝없이 발산할 수 있어요. 저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게 가능할까요? 거기에만 안주해서 머물러 있다면 전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래서 계속해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세상에 플러스가 되는 방법을 찾고 있죠. 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못 찾을 수도 있겠죠. 문화융합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시도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현재 홍대 쪽에 임대해준 건물에 소위 말하는 ‘클럽’이 들어와 있어요. 그곳에 종종 가서 보면 젊은 사람들이 와서 즐기고, 여러 회사에서 스폰서를 받고 그러면서 건물이 운영되고 있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 분야가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문화융합대학원에 입학을 결심하게 된 것도 그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김형민 동문은 얼마 전, 우리학교 대학원에 1억 원을 기부했다. 학교에 대한 애정과 마음의 무게를 덜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성균관대학교는 가난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준 기반이에요. 저는 학교에 대한 애정이 많아요. 몇 년 전, 학교에 새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저는 기부금을 내지 않았어요. 제가 처음 회계 법인에 입사했을 때 받은 월급을 부모님께 한 푼도 가져다 드리지 않았어요. 아직 내 파이가 작은데 이것을 나누어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차라리 이 적은 파이를 나 스스로 더 키워서 부모님께 드리겠다고 생각했어요. 못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당시 제 생각은 그랬어요. 몇 년 전에 학교에 기부금을 내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에요. 차라리 파이를 키워서 큰돈을 내지 적은 돈을 그렇게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러한 생각에서 그 때 돈을 내지 않았는데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다시 학교에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계속해서 고민했죠. 그 마음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고 싶었어요. 학교에는 앞으로도 계속 기부할 생각이에요.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여건이 되면 나중에 재산을 학교에 다 기부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어차피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저이고 죽음에 있어 그런 것들을 다 들고 갈 건 아니잖아요 하하.”

“저는 제가 확실하게 아는 것만 해요. 그게 현재에 만족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오히려 아는 것을 넓혀가기 위해서 도전하죠. 항상 모든 사업은 수업료를 내야 돼요. 시작 전에 그물을 쳐놓고 낚시 바늘을 던져 놓아야 하죠. 그 과정에서 시간과 돈이 들겠죠.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그물을 거두고 낚시 바늘을 건질 수 있어요. 그런 후에 거기 걸린 것이 어떤 것인지, 쓸 만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거죠. 지금은 그러한 사전 준비 과정 중에 있다고 보면 돼요. 앞으로도 계속 그 과정을 반복하겠죠.

항상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면 발전이 없어요. 새로운 그룹과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발전이 있는 거죠. 저는 항상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려고 해요. 젊은 친구들이나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과감히 투자하려고 하죠. 최근에는 홍대에 있는 건물의 옥상에 대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어요. 기발한 아이디어는 있지만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그 생각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그 곳을 내줘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제가 해왔던 일은 사실 대부분 ‘제로-섬 게임’이에요. 제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것을 빼앗게 되는 거죠. 저는 그 ‘제로-섬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도 ‘윈-윈 게임’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젊은 친구들을 후원해주는 사업도 구상하는 거고요. 더불어 문화와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회계사로 살면서 회의감 같은 걸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제 적성에 잘 맞는지도 모르겠고 제 관점에서는 비전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도전 해보지 않는 것보단 해보는 게 낫겠죠. 그렇게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준비를 하면 어떻게든 끝장을 보세요. 고시 준비를 하다가 한 번 실패 했다고 쉽사리 포기하는 사람들은 다른 일을 하더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제가 살면서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번지점프를 하는 거였어요. 저걸 대체 왜 할까 라는 의문이 들어 한 번은 번지점프대 위에 올라갔어요. 엄청 후회했죠. 내가 여기 왜 올라왔지 싶었고요. 이왕 올라왔는데 뛰지 않고 그냥 내려가는 건 제 기준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어요. 어차피 죽지 않을 테니까 뛰었죠. 번지점프나 고시나 어떤 다른 일에 도전하는 거나 다 똑같은 거예요. 시작을 했다면 쉽사리 포기하지 마세요. 제가 처음 회계사가 되었을 때보다 현재 회계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건 사실이에요.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졌죠. 그렇다고 비전이 없는 건 아니에요. 회계사가 된다면 많고 많은 99명이 아닌 단 하나가 되세요. 비슷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묻혀 가는 것이 아닌, 독특한 하나가 되세요. 그것이 수많은 회계사들 사이에서, 더 넓혀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유정수 기자
노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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