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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 지식채널 S


이제 막 성인이 된 많은 학우들이 기대하는 특별한 날이 있다. 바로, ‘성년의 날’. 생애 단 한 번, 오로지 나이만을 이유로 축복 받을 수 있는 날이다. 하지만, 성년의 날이 축하만을 위한 날은 아니라는 사실! 이번 학술에서는 곧 다가 올 성년의 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성년의 날’의 의미와 의의
성년의 날은 매년 5월 셋째 월요일로, 올해는 5월 21일이다. 법정 성인(만 19세)이 된 젊은이들에게 성인이 되었음을 자각시켜 줌과 동시에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 및 격려하고자 지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뿐만 아니라 갓 성인이 된 이들에게 사회인으로서 책무를 일깨워주고, 성인으로서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본래는 일정한 의례를 통해 이들이 성인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날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청소년위원회가 기념일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통과의례’는 사람들이 사회를 형성하면서부터 중요한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지녀왔다. 성인이 되었음을 축하하며 공식적으로 알리는 행사인 성년식 역시 다른 통과의례인 출생, 결혼, 장례와 마찬가지로 개인 ∙ 가족 ∙ 집단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져 왔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한 개인이 독립된 인격체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사회적 측면에서는 개인이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의미를 띤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성년식을 제정하는 데 나서는 것은 국가의 젊은이들이 이를 통해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깨닫고 바른 국가관과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 ‘성년의 날’의 유래
앞서도 언급했듯, 성년식은 예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통과의례로 여겨져 왔다. 어린이가 성장해 성년의 단계로 들어서는 것은 비로소 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국가별 ∙ 민족별로 다양한 성년식 행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년례(成年禮)가 발달했다. 고대사회부터 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성년식을 치른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광종 16년에 태자에게 원복을 입혔다는 기록이 있다. 원복은 당시 어른들의 평상복으로 이 대목은 태자에게 성인복을 입혔음을 뜻한다. 고려시대 때는 태자의 성년식을 거행해 성년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조선 초기의 성년식은 양반 계층 중심으로 행해졌다. 고려 말 명나라로부터 소개된 『주자가례』를 따라 사대부 계층에서는 관혼상제의식을 지키기 시작했다. ‘관례’, 즉 성년식은 이러한 관혼상제의 첫 번째 의식으로, 첫번째 관문이라 할 수 있었다. 관례를 통해 젊은이들이 아동기를 벗어난 성인으로서 예절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배우게 함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관례는 전해 내려오는 동안 지역과 가문 등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다가 개화사상이 퍼지면서 그 의미가 줄어들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지역 ∙ 마을 단위로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전통 의례를 치르는 곳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양식 성년식이 늘면서 전통 성년례의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1999년, 문화관광부(이후 국가청소년위원회로 변경됨)는 전통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키우고 전통 성년식에 담긴 의미를 강조할 목적으로 전통 성년례를 부활시켰다. 표준 성년식 모델을 개발해 전통 관례 복장을 갖추고, 의식을 주관하는 어른인 ‘큰손님’을 모신다. 성년의 날 행사는 상견례 · 삼가례 · 초례를 거쳐 성년선언으로 이어진다.

흔히 성년의 날에는 장미꽃, 향수, 키스를 선물로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창에 성년의 날을 검색해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성년의 날에 대해 물어보면, 선물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변 사람들이 성인이 됨을 축하해주며 주는 선물도 물론 좋은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성인이 되며 자신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과 책임에 대해 되새겨보는 것이야 말로 성년의 날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부합하지 않을까?

◎ 참고문헌
성년의 날,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성년의 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김규리 기자
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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