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은행나무 아래서 | 지식채널 S

글 : 이용규 경영대학 교수

현재 나는 경영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막상 누군가 나에게 대학 시절에 수강한 과목 중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을 질문한다면, (내 학부 전공인 경제학과 현재 전공인 회계학 관련 수업들을 많이 수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말해줄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동양의 고전'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신 철학 교수님께서 어느 날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하셨던 두 가지 질문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학부 2학년생으로서 한창 생각이 많았던 나를 비롯한 주변의 친구들은 각자 자기가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떠올리며 '존경받는 ㅇㅇㅇ'가 되고 싶다고 했다. 경제학 전공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진로로 생각해 오던 기업인, 경제학자, 공무원 등이 되어 해당 분야에서 성공하는 상상을 하면서 '성공한'이라는 말 대신 '존경받는'이라는 표현으로 좀 순화시켰던 것 같다. 반면 어떤 학생들은 권력을 누리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등의 표현을 직설적으로 또는 좀 순화해서 얘기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이런저런 답변을 다 들으신 교수님께서는 물론 이 질문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교수님 당신의 인생 목적을 조심스레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수강생 중에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던 '행복한 가정'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30세까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이 질문에 나와 친구들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과 유사하게 국가고시 합격과 같은 어떤 목표의 성취를 떠올리거나 세계일주 여행과 같은 취미 활동을 생각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30세가 될 때까지 '공부'를 해보라는 얘기를 하셨다. 교수님께서 어떤 종류의 공부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취직만을 위한 공부라기보다는 순수 학문 연구를 위한 박사과정 진학을 의미하신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사실 위 두 질문에 대한 교수님 스스로의 답변은 당시 나에게 좀 충격적이었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한 가정'을 목표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부'는 대학 졸업 때까지만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두 가지 화두는 그 이후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고, 꽤 오랫동안 이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엔 취직을 위해 공인회계사 준비를 시작하여 학부 졸업 직후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고, 이후 회계법인에 근무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육체적으로 바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해볼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가 다시 이 두 가지 화두를 다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는 (좀 의외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내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내와의 결혼을 생각하며 '행복한 가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당분간 살아볼 결심도 하게 되었다. 결혼한 후에 만약 내가 회계사 생활을 계속하려면 아내에게 유학을 그만두고 한국에서 같이 살자고 해야 하는데, 이는 아내에게 큰 희생을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그때는 회계사 생활이 내 적성에 맞는지 계속 고민해 오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아내에게 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결국에는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당분간 살아보려는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왔던 내가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니, 다름이 아닌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공부'하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공부할 분야는 당시 회계사로 일하면서 관심이 있었던 회계학으로 금방 정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전까지 유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유학 준비가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더욱이 유학을 가게 되더라도 매우 큰 돈이 필요할 것 같은 막연한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회계학을 비롯한 경영학 박사과정에서 대부분 등록금을 면제해 주고 생활비도 제공해 준다는 점을 알게 되어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유학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뉴욕에 있는 Columbia University 박사과정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실 이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 한국고등교육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내 유학 수기에 그 과정이 나와 있다.) 박사과정에서의 공부는 결국 30세가 훨씬 넘어서야 마칠 수 있었는데, 그 이후 뉴욕시립대(CUNY-Baruch College)에서 5년간 강의를 하고 성균관대에 오게 되었다.

현재 나는 회계학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일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내와의 만남이었지만, 중대한 의사결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철학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제시하셨던 두 가지 화두였다. 사실 '행복한 가정'과 '30세까지의 공부'라는 두 가지 화두를 처음 접할 때 나의 반응은 오히려 일종의 거부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그때 생각의 문을 닫지 않고 철학 교수님의 다른 생각을 받아들여 '인정'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요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며 주로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데, 어떤 방송에서 최근 10대와 20대가 자주 사용하는 줄임말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초성으로 단어를 대신한다고 하던데, 'ㅇㅈ'이 '인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흥미롭기도 하면서도 나도 어느덧 요즘 학생들과 다른 세대가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유행이 나에게는 새로움 또는 '다름'으로 다가오는데,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다름'도 가능하면 인정(또는 'ㅇㅈ')하면서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철학 교수님의 다른 생각을 결국에는 인정하고 따르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요즘 나는 여전히 '행복한 가정'을 꿈꾸면서도 직업상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철학 교수님으로부터 처음 접했을 때 (아마도 잘 몰랐기 때문에) 약간 쉽게 생각하고 거부했던 이 두 가지 화두가 나에게는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현실이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 두 가지 화두는 나에게 평생 진행형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받아들인 이후의 인생이 그전보다 더 풍요로워진 것 같아 아직까지 별 후회는 없다. 앞으로도 나는 '다름을 인정'하며 더욱 풍요로운 인생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조금은 부끄러운 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가끔은 다름을 인정하면서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길 소망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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