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은행나무 아래서 | 지식채널 S

글 : 김호덕 의과대학 교수

외국의 도시지역에서 열린 국제학회 참석한 후 그 도시의 주변을 돌아보는 정도의 짧은 여행경험은 꽤 있었지만 2주 이상, 필자로서는 긴 시간 그것도 자동차를 이용해 미국의 서쪽 연안을 따라 여행한 것은 독일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때 이후 거의 30여 년만이었다. 더욱이 여행기는 처음이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지 25년이나 지났고 한두 번 이상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사람이 드물며 휴가철이면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로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금, 여행가이드 같은 여행기에 어느 누가 눈길을 주겠는가. 해서 여행에서 느꼈던 몇 가지를 적어본다.

우리 음식. 오전 6시.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친구와 코리아타운의 이름이 알려졌다는 설렁탕 집을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손님들이 여럿 있었고 잠시 후 인디언 아니면 라틴계로 보이는 일단의 남녀가 들어와 우리 옆 테이블에 앉는다. 이 친구들이 쌀밥에 설렁탕에 김치를……. 호기심에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니 맛이 좋단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단골손님이라는 주인장의 말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찾는 음식의 하나인 설렁탕? 중국의 완탕이나 교자, 일본의 생선초밥이나 김초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기본질서를 지키는 사회. 미국은 세계 제1의 강대국이요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사고, 사건 등이 일어난다. 결코 무결점의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신호등이 없는 도시의 뒷길에서(시골 길에서도) 사람과 자동차가 마주쳤을 때 자동차가 먼저 지나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무조건 선다. 경적 소리도 듣기 어렵다. 공공장소는 물론 사유지의 주차장 - '장애인 전용' 표시가 있는 주차지역은 주차해야 할 차량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어도 비어 있다. 아예 이런 곳에는 주차할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고속도로나 이면도로 할 것 없이 과속하거나 추월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일반 음식점이나 관광지에서도 큰 소리로 웃거나 떠드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으로 생활화되어 있는 것 같다. 교통질서를 일례로 들었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그들 사회를 떠받쳐주는 큰 힘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였다

옛것의 보존. 미국의 서부는 원래 인디언의 땅이며 백 년, 2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벌한 무법지대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들은 어두운 과거의 행적이라도 보존하거나 복원한다.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라즈(Alcatraz) 섬의 악명 높았던 감옥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또한 알라모 스퀘어에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들어선 빅토리아풍의 아름다운 목조 건물들이 많은데 지금도 사람들이 거주한다. 시내 곳곳에서도 유사한 목조 건물들을 상당수 볼 수 있다.

특히 19세기에 만들어진 이 지역의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예전 모습 그대로의 전차는 명물 중 명물이다. 전차를 보고 있자니 중고등학생 시절 서울에서 전차를 타고 통학하던 때가 그리워진다. 지금도 서울 거리에서 전차를 볼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보존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대자연. 요세미티(Yosemite: 시에라네바다 산맥 서쪽에 있는 3천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자연공원)는 1984년 세계자연유산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우리의 산악처럼 아기자기한 멋은 없지만 2천여 미터에서 내려다보는 계곡, 세쿼이아로 이루어진 거대한 삼림, 다양한 모습의 화강암 암벽<엘 캐피탄(El Capitan), 노스 돔(North Dome) 등>, 폭포(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실제로 폭포는 볼 수 없으며 절벽만 보인다) 등은 자연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새삼 일깨워준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요세미티의 하늘에서 유난히도 크고 밝게 빛나며 다가오는 달과 쏟아질 것 같은 별들. 지금까지 60년이 넘는 시간을 살면서 이와 같은 광경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마음의 여유 없이 지금까지 완벽함만을 고집하며 살았는지(완벽을 찾는다면 영원히 만족하지 못할 거라는 톨스토이의 '안나 칼레리나'의 한 구절이…….). 요세미티의 숲 속 오두막에서 보낸 하룻밤은 영영 잊지 못할 추억이다. 요세미티에서는 하이킹, 래프팅, 암벽타기 등도 가능하다고 한다. 시골 길을 지나면서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거대한 평원. 평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검정 소와 젖소, 양의 무리, 끝이 보이지 않는 포도나 오렌지 농장, 우리와 비슷하지만 좀 더 여유 있어 보이는 재래시장, 시장 한쪽에서 한가로이 노래하는 악사……. 도시생활에 지친 나그네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미국이 경제, 군사, 기술력 등을 종합하여 세계 1위라는 현재의 위치에 오기까지는 거의 2백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경제학자이며 미래의 모습을 예측한 '미래의 물결'의 저자이기도 한 프랑스의 지성으로 잘 알려진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정부의 부채증가, 빈부 격차로 인한 양극화 등으로 2030년 경이 되면 미국은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지만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풍부한 자원, 발전된 기술력 등으로 2030년이 되어도 여전히 세계 1위 국가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서부를 돌아보면서 올바른 교육이야말로 선진사회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은 아직도 자유로움 가득한 기회의 땅이며 할 일도 많은 것 같다.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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