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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 캠퍼스컬쳐

지난 6월 수원문화재단은 유럽 예술 기행을 주제로 인문학 콘서트를 열었다. 이 행사는 유럽 네 개의 도시를 배경으로 미술, 음악, 역사를 아우르는 예술의 장이다. 11월까지 진행되는 콘서트의 첫 번째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이다. 이탈리아 북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보다 영토가 작고 내륙에 위치한 영세중립국이지만 모차르트, 슈베르트와 같은 천부적인 음악가들의 고향이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화가와 건축가들이 뿌리를 둔 곳이기도 하다. 이번 문화읽기에서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화가 클림트, 실레 그리고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오스트리아 대표 화가인 클림트는 비엔나 분리파의 창시자이다. 여기서 분리란 전통에서의 분리를 뜻한다. 과거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삶과 미술의 소통, 인간 내면적인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클림트의 그림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은은히 풍기는 관능적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성들은 장식적인 표현과 화려한 색채로 그려져 있으며 그의 그림은 찬란하고 화려한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클림트의 그림이 ‘색채로 표현된 슈베르트의 음악’이라 불리는 이유다. 클림트가 금으로 모자이크 작업을 했던 배경에는 세공사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있다.

비엔나에서 클림트를 보려면 제체시온이나 벨베데레 상궁(Upper Belvedere)으로 가야 한다. 제체시온에는 클림트가 그린 벽화가 있고 벨베데레 궁전에는 “키스”, “유디트”,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등 클림트의 대표작이 있다.

위 사진에서 왼쪽 사진은 “Poetry" 부분이다. 인간이 행복에 대한 갈망을 시에서 충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에서 시선을 이어가면 오른쪽 사진에서 보이는 ”The kiss to the whole world“를 볼 수 있다. 이는 베토벤 프리즈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이다. 거대한 괴물인 Typhoeus, 슬픔, 광기, 죽음 등을 지나 행복에 다다른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제체시온은 비엔나 분리파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들이 활동하기 위해 건설한 건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건물의 메인 홀에는 클림트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인 “베토벤 프리즈”가 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며 인간이 희망을 찾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전시회 첫날 구스타프 말러가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작품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전시회는 베토벤을 위한 것이었다. 클림트가 아버지 뿐만 아니라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레오폴트 박물관에 전시된 편지들로 클림트가 에밀리 플뢰게(Emilie Louise Floge)에게 쓴 것이다. 에밀리 플뢰게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로 클림트의 정신적 사랑의 동반자로 평생을 지낸 사람이다. 클림트가 그녀에게 쓴 편지만 400여 통에 달하고 죽는 순간에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드레스덴에서 쓴 편지: Stayed in Berline for the day yesterday, evening Dresden, hope to leave latest Saturday evening, [in] Vienna possibly Sunday morning fondest regards Gustav

피사에서 쓴 편지: Arrived here today, Saturday afternoon, amidst heavy rain, but in good health sending you my fondest regards Gustav

에밀리 플뢰게야말로 평생 결혼하지 않고 여러 여성들과 어울렸던 클림트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키스”의 여주인공 역시 그녀라고 추측하고 있다.




실레는 클림트와 더불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자화상과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의 표현으로 유명하다. 실레는 1907년에 처음 클림트를 만나 그의 애제자가 되었다. 실레가 자신의 작품을 클림트의 작품과 교환하고 싶어 하자 클림트는 실레의 그림이 더 훌륭하기에 자신이라면 바꾸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이러한 일화가 보여주듯이 클림트는 실레의 재능을 아주 높이 평가했다. 클림트의 마지막 모습을 실레가 그릴 정도로 둘은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실레의 작품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클림트의 것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클림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의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정서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다소 날카롭고 왜곡된 표현을 통해 그의 정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특징은 에곤 실레 평전을 쓴 라인하르트 슈타이너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실레는 사소한 물건들에 관심이 많고 여행을 좋아하며 잘난 척하는 편이다. 멋내기에도 관심이 많다. 한편 이면에는 우울하고 애수에 젖은 예술가이자 자신을 신비주의에 가까운 성찰력을 가진 일종의 예언자로 생각했다.”

비엔나에서 실레를 만나려면 레오폴트 박물관에 가야 한다. 레오폴트 박물관은 2001년에 탄생한 어린 박물관이지만 Museums Quartier Wien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곳이다. 이박물관이 세계 최대의 실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실레의 작품을 가진 박물관답게 자화상 외에도 다양한 실레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실레가 쓴 시, 체스키에서 실레가 그린 풍경화 등이다. 실레는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에 머물며 풍경화에 매진하기도 했다. 당연히 체스키 크룸로프에 있는 에곤 실레 미술관에서도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실레가 어느 지점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그림을 그렸는지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어 더욱 생생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레오폴트 박물관에서 실레 작품 외에 클림트가 쓴 편지, “죽음과 삶”, “아터제”와 같은 클림트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으니 천천히 시간을 두고 둘러보길 권한다.

실레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에 징집되어 전쟁 기간 동안은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실레가 1915년에 그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보면 “How long is this wretched War going to last-it is the worst time that people have ever lived through." 라는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유럽인으로서 평화를 사랑했던 실레의 모습은 그의 일기와 편지 곳곳에서 드러난다. 실레는 전쟁 중 빈으로 돌아왔지만 독감으로 인해 전쟁이 끝나기 전 생을 마치고 만다. 1918년, 클림트가 죽은 해와 같은 해였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비엔나에 지은 집합주택이다. 건물의 모든 면이 빨강, 검정, 파랑, 노랑 등 강렬한 색으로 칠해져 마치 알록달록한 동화책을 연상하게 한다. 건물자체와 주변의 바닥은 완만한 곡선을 띄고 있어 아이들이 찰흙으로 만든 것같기도 하다. 실제로 훈데르트바서는 수직적이고 삭막한 현대건축을 싫어했다. 대신 다양하고 선명한 색과 곡선, 저마다 다른 창문 크기와 창틀을 적극 사용해 자신이 이상적이라 생각한 집을 실현시켰다.

위에서 다룬 클림트, 실레에 비해 유명하지 않아서인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비교적 한적한 편이다. 평범한 주택가 사이에 위치해 있다 보니 거리 이름을 확인하고 근처 가게나 주민들에게 물어보면서 길을 찾아야 했다.

실제로 사람이 사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와 달리 쿤스트 하우스 빈은 미술관처럼 운영되고 있다. 빨강, 녹색, 하양 등 다양한 작은 타일이 바닥을 이루고 있고 기울어지고 튀어나온 부분도 있었다. 실내 곳곳에서 여러 식물들도 볼 수 있다. 쿤스트 하우스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20분가량 걸으면 나온다. 오스트리아의 또다른 도시인 그라츠에 쿤스트 하우스라는 유명한 건축물이 있어 지도에서 쿤스트 하우스 빈 혹은 훈데르트바서 박물관이라고 찾아야 한다.

훈데르트바서의 본명은 프리드리히 스토바서(Friedrich Stowasser)이다. 그는 스스로 개명했는데 그의 새 이름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100개의 강’을 뜻한다.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연과 환경, 삶을 사랑했다. 이때문에 그에게 곡선은 삶의 연장선을, 다채로운 색들은 생명의 다양함을 의미한다. 그는 미술, 건축 등 왕성한 작품 활동 외에 자연보호, 반핵운동 등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생을 자연과 예술을 위해 살았던 훈데르트바서는 뉴질랜드의 ‘행복한 죽음의 정원’에 묻혀 평생 자연과 함께하고 있다.

여행의 묘미는 그곳에서만 만들 수 있는 추억일 것이다. 벨베데레 궁전의 '키스'처럼 대표 소장품들은 대개 대여 교류에서 제외되므로 여행갔을 때 꼭 관람하기를 권한다.

송예균 기자
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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