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독자투고

글 : 허유민 국어국문학과 (12)

겨울방학이 한 달 남았던 지난 1월 31일, 나는 일본 오카야마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평소에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일본으로 가는 단기연수 프로그램에 덥석 지원했다.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부터 일본에 갈 생각에 들떠 날씨나 여행 정보 등을 알아봤다. 하지만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일본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늘기를 기대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대신 일본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좋은 인연을 만들고 오는 걸로 만족하자, 그렇게 다짐을 했다. 그런 마음을 하고 가서인지 나는 정말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가는데 1시간 반의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보낸 3주는 바쁜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오카야마는 굉장히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로 복잡한 서울과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주택가 골목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조용했고 길거리에는 종이 조각 하나도 없었다. 가끔 날씨가 흐릴 때를 제외하고는 하늘도 맑고 깨끗했다. 소도시라 그런지 밤에는 별도 많았다. 게스트하우스 겸 호텔 앞 편의점에서 야식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이면 다들 목을 꺾고 걸으면서 별을 구경했다. 매일같이 일본어를 배웠던 오카야마 대학교는 캠퍼스가 정말 넓었다. 아침에는 목도리를 두르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들로 보도가 꽉 찼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었지만 두 대뿐이라 열 두 명이었던 우리들은 강의실까지 걸어 다녔다. 자전거 홍수 속에서 혼자 유유히 걸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민망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주변을 자세히 구경하면서 갈 수도 있었다.

일본어 수업은 한국에서 공부하던 때와는 정말 달랐다.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재미있다고 느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흥미를 붙일 수 없었던 영어는 당연하고, 처음부터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배운 일본어 조차 단어를 외우거나 문법을 배우는 건 결코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죽은 공부’였던 것 같다. 오카야마에 와서 배운 일본어는 무엇보다도 생생했다. 실제 일본어를 쓰는 일본인 선생님에게 매일같이 일본어를 배운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고 효과적인 공부 방법이었다. 학원에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그저 앉아서 배우는 공부가 아니라, 실제로 얘기해보고 적용해보면서 하는 공부는 효과도 그렇고 스스로의 기분과 성취감이 달랐다. 3주가 아니라 여기에 3개월, 아니 3년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본에 있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일과는 대개 이러했다. 아침 8시 40분부터 쓰기와 말하기 수업을 듣고 12시에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캠퍼스 아시아에서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가 없는 날이면 오카야마 시내로 놀러 나갔다. 시내에서는 일본의 유명 쇼핑몰인 IEON몰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거나 드러그 스토어에서 쇼핑을 했는데, 어떤 때는 가라오케도 가보고 일본 술집에 가보기도 했다. 일본에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가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곤해도 매일같이 돌아다녔다. 주말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조금 쉬다가 어김없이 시내로 나가서 구경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길거리의 모습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한국과는 다른 일본만의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우산을 말아 접고 몸에 꼭 붙여 들고 다니는 세심함이나 페트병의 병뚜껑까지 분리수거를 하는 꼼꼼함도 그렇게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의외로 음식이 한국음식보다 짜고 달 때가 많았다는 것도, 마트나 편의점에서 비닐봉투를 그냥 무료로 준다는 것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일본에 오기 전, 같은 아시아권에다 가까운 나라니 문화가 많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은 이런 소소한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바뀌어갔다.

일본에 온 지 2주 째 되는 주말에는 그곳에서 만난 언니와 함께 오사카로 여행을 떠났다. 금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겨 들고 떠난 여행은 일본 어학연수 중에 있었던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숙소를 못찾아 밤중에 이리저리 헤맸던 기억도, 방금 막 구운 타코야끼를 먹다 입천장이 홀랑 데어버린 것도 다 괜찮았던 좋은 여행이었다. 같이 온천에 가서 피로를 풀 수 있었고, 구경하고 싶은 예쁜 가게들도 실컷 구경했다. 나는 괜찮은 청자켓과 좋아하는 작가의 일본어 책도 살 수 있었다. 오사카에서 우리는 성을 구경하거나 관광지를 둘러보기 보단 서로 좋아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뭔가를 사고 구경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이 짧기도 했지만, 관광을 위해 이리저리 다니기 보다는 좋아하는 몇 가지에 집중하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도 약속 장소와 시간만 정한 뒤 서로 구경하고 싶은 곳을 둘러보다 오후 세 시쯤 다시 만나서 오카야마로 돌아왔다.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에는 시험과 발표 준비로 정신 없이 일주일이 흘러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3주는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일본을 다녀오고 난 후 내 일상은 당연하게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되고 예전과 똑같이 정신없이 통학을 하며 과제를 하고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일본에 다녀오기 전과 후의 나는 뭔가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있을 때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앞으로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이 어학연수 덕분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지도 몰랐을 11명의 성균관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일본에서 3주 동안 직접 살아봤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생각과 경험도 잔뜩 얻게 되었다. 천여 장에 가까운 사진들, 내 컴퓨터 옆에 놓여있는 손목 보호인형과 책장에 꽂힌 일본어 책, 그 외의 일본에서 사온 물건들은 아직도 여기 한국 곳곳에 남아있다.

송예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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