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독자투고

글 : 이수진 경영학과(14)

현재 내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키워드는 학점도, 연애도, 진로도 아닌 '아르바이트'다. 학교와 공부로부터 억압당하던 수험생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멋진 대학생이 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며 공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수험생과 다를 바 없는 '알바생'이라는 노예 신분을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따라서 내게 있어 아르바이트는 수험생활과 비슷하다.

일단, 아르바이트와 수험생활 모두 해야 하는 목적이 있다. 수험생의 목표가 대학 합격이었다면, 알바생의 목적은 다름 아닌 생계유지. 매달 나가는 자취방 월세 40만원, 생활비 40만 원을 벌어야 하는데, 시급 5,300~5,500원을 받으면서 한 달에 80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주 6일 오후 5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하게 되면서 내 일상은 오직 아르바이트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동기들 사이에서 '알바몬'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한창 새내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그들과 달리 축제, MT와 같은 거의 모든 학교 행사, 반 행사에 불참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공부했던 과거의 나, 그리고 가게에서 쉼 없이 뛰어다니며 서빙 하는 현재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분명 공통점이 있다. 그때도 공부는 정말 하기 싫었었고, 지금도 알바가 하기 싫지만 둘 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주 똑같다.

또 다른 공통점은 능력치 향상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공부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할수록 성적이 오르는 것처럼, 아르바이트 역시 오랫동안 하다 보면 일을 잘하게 된다. 매일 오픈 준비부터 손님 안내, 계산, 서빙, 반찬 담기, 음료 제조, 테이블 치우기, 설거지, 세탁, 청소, 마무리 마감까지 온갖 잡다한 일(세세하게 얘기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할 일이 매우 많음)을 거의 일 년 동안 반복해서 해오다 보니 이제는 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하게 되는 경지에 올랐다. 이때 내가 진정한 '노예'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이처럼 능력이 향상되면서 얻은 것은 조금씩 인상되는 시급(처음에는 시급이 5,300원이었지만 지금은 6,500원!)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신뢰와 지지. 마치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칭찬받고 용돈도 많이 받는 것과 같다. 그래, 나는 알바계의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모범생에게도 한 번씩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는 것처럼, 내게도 아르바이트 생활을 오래 하면서 힘든 시기가 종종 찾아왔다. 나의 경우에는 아르바이트와 학교를 병행하다 보니 시험 기간이 되면 당일 아침까지 밤새워 공부해서 시험 보고,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 가서 일하고, 끝나면 다시 밤샘 공부하고 시험 보는 생활이 1, 2주 정도 반복되니까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말 그대로 멘탈이 '탈탈' 털렸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아르바이트하느라 학점에 많이 신경을 쓰지 못하다 보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고, 고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성대에 들어왔는데 고작 서빙이나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다음 학기도, 그다음 학기도 이렇게 힘들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했다. 내 대학생활이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은 언제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면 나는 내게 늘 한 가지 처방을 내렸다. 바로 1, 2주 혹은 한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그냥 쉬는 것이다. 일명 '휴식기'로 푹 쉬면서 떨어진 마음의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인데, 이때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면서 내적으로 많이 성숙해졌다. 집안 사정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 보다, 힘든 상황을 잘 견디고 있는 자신을 다독이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빨리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자고 마음먹었다. 쉬다 보면 금전적으로 힘들어져서 자연스럽게 다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면 다시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것이다. 수험생일 때도 너무 공부가 지치고 힘들 때면 하루, 이틀 정도는 아예 공부 안 하고 놀면 스트레스가 풀렸는데, 알바생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역시 수험생활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돌이켜 보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처럼 알바 생활도 그랬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면서도 일 년 7개월 넘는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계속 해왔던 것은 그로부터 좋은 추억과 소중한 인연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랜 기간 같이 일해 온 언니, 오빠들과 같이 여행도 다니고, 함께 술을 마시면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대학 친구들보다 더 친하고, 엠티나 축제 가서 노는 것보다 가게 회식 자리가 더 익숙하며, 사실 학교보다 가게에 있는 게 더 편하고 재미있을 때가 많다. 아르바이트로 시간과 청춘을 낭비하는 것이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게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보낸 시간이 곧 '청춘'이었다. 친한 사람들과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했고, 끝나면 신나게 놀았으며, 너무 힘들 때는 서로에게 위로받았고, 그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이런 것들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와서, 잃고 싶지 않은 아쉬움 때문에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수능 시험을 보고 나면 수험생은 선택하게 된다. 수험생활을 끝낼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다. 결정은 자신의 몫이다. 혼자 서울에 살게 되면서 자립해야 했을 때부터 최악의 학점을 받았을 때, 워킹홀리데이를 결정하고 휴학했을 때, 일과 학교로 반복되는 고된 일상이 지치고 힘들게 느껴질 때, 그때마다 나는 망설이거나 주저하면서도 결국 다시 '아르바이트생'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마지막까지 노력해서 공부한 끝에 대학에 당당히 합격해 수험생활을 끝냈던 것처럼, 앞으로는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여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김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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