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독자투고

글: 임경희

당고개 쪽으로 올라가는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혜화로 가는 길에는 지상역이 하나 있다. 동작이다. 동작에서 이촌에 가려면 한강 다리를 넘어야해서 동작역은 땅 위로 높게 올라와 있다. 아침에 4호선을 타고 동작에서 이촌으로 넘어가는 구간을 지날 때면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직 해가 꼭대기에 오르지 않아 푸르스름한 서쪽 편과 해가 떠 희게 튼 동쪽을 보면 진짜 하루가 시작된 기분이다. 특히 월요일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창밖 너머로 한강 변을 따라 죽 늘어선 아파트들, 건물들, 그리고 앞에 앉은 사람 너머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스쳐 지나가는 철로를 보고 있으면, ‘아, 이번 주도 시작됐구나.’ 하는 피곤과 함께 ‘오늘부터는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의지를 다진다. 나는 동작에서 이촌으로 넘어가는 이 다리 위 구간을 좋아한다.

내가 이 다리 위 구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단 이 구간에서 보이는 아침 한강 풍경이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작에서 이촌 구간을 넘어가는 4호선을 타 본 사람이 라면 알 것이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아침 시간에 4호선을 타면 동작에서 이촌 넘어가는 한강 다리 위를 지날 때 기관사 아저씨가 종종 아침 인사 방송을 하곤 한다. 나는 이 인사가 좋다. 기관사 아저씨의 아침 인사를 들으면 예상치 못했던 사람에게서 사탕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기관사 아저씨가 종종 아침 인사 방송을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고, 학교를 다닌 지 근 1년이 다 돼서야 알았다. 나는 항상 밖에서 이동할 때 노래가 쾅쾅 울리는 이어폰을 끼고 다녔기 때문에 기관사 아저씨가 이런 방송을 하는 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언제 한 번, 무엇 때문인지 이어폰 너머로 희미한 방송 소리를 들었다. 내 눈 앞에는 피곤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저씨와 나처럼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는 젊은 여자, 헤드폰을 끼고 책을 보고 있는 남자, 창문 너머로 덜컹덜컹 한강 위를 지나가는 철로가 보이는 익숙한 지하철의 모습이 있었다. 기관사 아저씨의 아침 인사 방송은 그 익숙한 모습 위로 새로움을 덧씌웠다.

방송 속에서 기관사 아저씨는 대충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지하철 4호선 XXXX호를 운전하고 있는 기관사 XXX 입니다. 승객 분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바래다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그 말이 왜 이리 인상 깊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흰 빛으로 밝아오는 아침 하늘과 함께였기 때문인지, 내가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던 것처럼 어느 누구도 기관사 아저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아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그런 아침 인사를 들어본 적이 오래 되었기 때문인지.

나는 아마 그것이 요새 보기 힘든 부담스럽지 않은 진짜 친절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기관사 아저씨는 그저 자신의 책임을 말로써 표현하면서 승객과 기관사의 거리에 맞는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기관사 아저씨의 인사는 본인의 이익을 위한 가짜 친절이 아니었다. 그 인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로 얼굴을 몰라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임을 알기에 가볍게 나누는 인사와 비슷했다.

아는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체로 그렇게 한다. 하지만 모르는 이에게 아무런 저의 없이 친절하기란 어렵다. 당장 거리만 나가도 ‘필름을 바꿔 주겠다.’며 손목을 잡아끄는 핸드폰 판매원들과 ‘기운이 좋아 보인다.’며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미심쩍은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친절로 가장한 알 수 없는 속내가 친절을 단순한 친절로 받아들이지 못 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 친절마저도 의심하게 만든다. 내밀어진 친절에 마주 웃어주며 또 다른 친절로 답하던 시간은 이제 없다. 내밀어진 친절에 얼굴을 굳히고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것이 요즘이다.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모르는 이들의 친절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나쁜 마음을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 사회를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는’ 사회라고 부른다. 그네들의 말처럼 이런 사회에서 모르는 사람의 친절을 받는 대로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도 우리 사회에 진짜 친절보다 꿍꿍이가 숨어 있는 가짜 친절이 훨씬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짜 친절에 더 감사해야 한다. 4호선 기관사 아저씨의 아침 인사와 같은 진짜 친절을 보기 힘든 만큼, 우리에게 진짜 친절이 내밀어 졌을 때 친절을 베푼 상대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감사합니다.’ 한 마디면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진짜와 가짜 친절을 구분할 줄 아는 시선을 갖춰야 하겠다. 사람을 속이는 방식이 점점 교묘해지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안목을 기르는 일은 참 힘들지만 원래 전부 쉬운 일은 없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확신하건대 이렇게 기른 안목은 꼭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의 커리어에, 인간관계에, 삶 전체에.

받은 친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진짜 친절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우리가 아침에 받은 작은 친절은 우리의 하루를 잠깐이라도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그 친절에 딱 맞는 공정가가 될 것이다.

송예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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